1. 서론
해양은 기후변화의 영향을 가장 먼저, 가장 심층적으로 받는 지구 시스템 중 하나다.
수온 상승, 염분 변화, 해류 재편, 산성화 등은 단지 화학적 조성의 변화에 그치지 않고,
소리(sound) 의 전달 방식—즉 해양 음향전달(acoustic propagation)—에도 직접적인 변화를 일으킨다.
소리는 물속에서 빛보다 훨씬 멀리, 빠르게 전달되며,
대부분의 해양 생물(고래, 돌고래, 어류, 갑각류 등)은 이를 주요 의사소통 수단으로 활용한다.
따라서 기후변화로 인해 해양의 음속 구조가 변하면,
결국 생물 간 신호 체계(communication network) 가 교란되며,
이는 생태계의 상호작용과 군집 구조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2. 기후변화와 해양 음속 구조 변화
해수 중 소리의 속도 ( c )는 온도 ( T ), 염분 ( S ), 깊이(압력) ( z )의 함수로 표현된다:
[
c = 1449 + 4.6T - 0.055T^2 + 1.39(S - 35) + 0.017z
]
기후변화는 이 세 요인 모두를 변형시켜 해양 음속 구조(sound speed profile, SSP)를 바꾼다.
2.1 수온 상승
표층 수온이 상승하면 음속이 증가한다(약 1°C당 4–5 m/s).
이에 따라 음파는 표층에서 더 강하게 굴절되어,
음파 채널(sofar channel) 의 깊이가 얕아지고 전달 범위가 짧아진다.
이는 장거리 통신을 사용하는 고래류에 치명적이다.
2.2 염분 감소
극지 및 고위도 해역에서 빙하가 녹으면서 담수가 유입되면,
염분이 낮아지고 그 결과 음속이 감소한다.
이로 인해 음파는 상층에서 더 쉽게 산란·흡수되어,
의사소통 거리가 줄어들고 에너지 손실이 커진다.
2.3 수직 혼합의 약화
해수의 밀도 차이가 커지면 층화가 강화되어,
음파가 수직 방향으로 전파되는 데 필요한 경로가 단절된다.
즉, “소리의 통로(acoustic corridor)” 자체가 왜곡된다.
3. 음향전달 메커니즘의 변형
기후변화는 해양의 음향전달 특성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
3.1 음속 최소층의 이동
전통적으로 심해에는 소리가 가장 멀리 전파되는 SOFAR 채널(Sound Fixing and Ranging Channel) 이 존재한다.
그러나 수온 상승으로 이 채널의 깊이가 얕아지거나 불안정해지면서,
음파의 장거리 전파 효율이 감소하고 지역 간 생물음 교류가 단절된다.
3.2 음향 감쇠(attenuation)의 증가
해수의 산성화(pH 저하)는 보론이온 흡수 능력 감소를 유발해,
특히 1 kHz 이하의 저주파 소리 감쇠율을 높인다.
이로 인해 고래류와 같은 저주파 의사소통 종의 신호가 멀리 전달되지 못한다.
3.3 소리의 산란(scattering) 증가
플랑크톤 밀도 변화나 미세입자 증가로 인해 산란 효과가 커지면,
음파 에너지가 분산되어 신호-잡음비(SNR)가 저하된다.
이는 복잡한 ‘음향 안개(acoustic fog)’를 형성해,
생물이 소리를 구별하기 어렵게 만든다.
4. 생물 의사소통의 교란 사례
4.1 대왕고래(Blue whale)의 주파수 저하 현상
대왕고래의 발성 주파수는 지난 50년간 약 30% 감소한 것으로 관찰되었다.
이는 바다의 배경소음 증가뿐 아니라,
음속 구조 변화로 인해 신호 감쇠가 커지면서 더 낮은 주파수로 신호를 보정한 적응반응으로 해석된다.
4.2 돌고래의 에코로케이션 거리 단축
열대 연안의 수온 상승 구역에서,
병코돌고래(Tursiops truncatus)의 반향탐지 거리(range)는 약 20–25% 감소하였다.
이는 고온수층에서의 소리 흡수율 증가와 산란 강화에 기인한다.
4.3 어류 군집의 의사소통 혼선
어류의 발성음은 대부분 100–800 Hz 범위에 위치한다.
해수 온도 상승과 염분 변화로 인해 저주파 전파가 약화되면서,
군집 내 의사소통 거리와 사회적 행동(짝짓기, 먹이 탐색)이 저하되었다.
5. 생태학적 함의
- 의사소통 범위 축소 → 개체군 연결성 감소
장거리 신호 약화로 개체 간 이동·번식 네트워크가 분절되어
유전적 다양성이 감소할 가능성이 있다. - 생태계 시간-공간 구조의 왜곡
계절적·공간적 신호의 동기화(synchrony)가 깨져
산란·이주 시기의 불일치(phenological mismatch)가 발생한다. - 소리 기반 생태계 서비스 저하
해양 음향은 탐사, 항법, 어업 예측 등 인간 활동에도 중요한 정보원이므로,
음향전달의 왜곡은 인류의 해양 활용 효율에도 직접적인 손실을 준다.
6. 결론
기후변화는 해양의 소리길(sound path) 자체를 바꾸며,
이는 생물의 의사소통 구조와 생태적 상호작용을 근본적으로 재편한다.
온도 1~2°C의 상승이 단순한 물리 현상이 아닌,
생태계의 언어가 변형되는 사건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는 깊다.
해양 음향전달 특성의 변화는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생태계 내 정보 교환과 번식 전략, 군집의 안정성에 결정적 영향을 준다.
따라서 향후 기후모델에는
“음향 생태학(acoustic ecology)” 요소를 통합한 예측 체계가 필요하다.
기후변화는 바다의 온도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바다의 ‘소리’를 바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