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원 반데르발스 이종접합 구조에서의 초전도성 발현: 트위스트로닉스와 무아레 초격자의 양자 혁명
2차원 반데르발스 이종접합(van der Waals heterostructures)은 원자 한 층 두께의 2차원 물질들을 레고 블록처럼 쌓아 올려 만든 인공 초격자 구조입니다. 각 층은 강력한 공유결합이 아닌 상대적으로 약한 반데르발스 힘으로 결합되어 있어, 격자 상수나 결정 구조가 서로 다른 물질이라도 화학적 제약 없이 자유롭게 융합할 수 있습니다. 최근 응집물질물리학계에서 가장 경이로운 도약은 바로 두 층의 각도를 미세하게 비틀어 겹쳤을 때 나타나는 초전도 현상, 이른바 '트위스트로닉스(Twistronics)'의 등장입니다.
무아레 초격자(Moiré Superlattice)와 평탄 띠(Flat Band)의 형성
2018년 MIT의 파블로 하릴로-에레로(Pablo Jarillo-Herrero) 교수 연구진은 두 장의 단일층 그래핀을 정확히 1.1도 비틀어 겹쳤을 때, 전기 저항이 0이 되는 초전도 상태가 발현됨을 세계 최초로 발견했습니다.
두 육각 격자가 미세하게 어긋나게 겹치면, 원래의 원자 간격보다 훨씬 거대한 스케일의 주기적인 기하학적 간섭 무늬가 생기는데, 이를 '무아레 초격자(Moiré Superlattice)'라고 합니다. 이 거대한 거시적 주기는 전자의 파동 함수에 극적인 변화를 일으킵니다. 전자들이 무아레 패턴의 특정 위치(AA 적층 영역)에 갇히게 되면서, 페르미 준위 근처에서 전자의 운동 에너지가 거의 0에 수렴하는 '평탄 띠(Flat band)' 에너지 준위가 형성됩니다. 평탄 띠 내에서는 전자들이 격자를 따라 빠르게 이동하지 못하므로, 전자들의 운동 에너지보다 전자들 사이의 쿨롱 반발력(상호작용)이 물리적 특성을 압도적으로 지배하게 됩니다. 이로써 인위적인 '강상관 전자계(Strongly Correlated Electron System)'가 구현되는 것입니다.
모트 절연체(Mott Insulator) 위상과 초전도 돔의 발현
강한 쿨롱 반발력으로 인해 전자들은 서로를 밀어내며 격자점 위에 꼼짝없이 갇히게 되는데, 이를 모트 절연체(Mott Insulator) 위상이라고 합니다. 놀라운 점은, 이 꽉 막힌 절연체 상태에 외부 게이트 전압(Gate voltage)을 인가하여 전자(혹은 정공)의 농도를 미세하게 조절(도핑)하면, 갑자기 전자들이 강력한 짝(쿠퍼쌍)을 이루며 저항 없이 흐르는 초전도 상태로 상전이를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게이트 전압(전하 운반자 농도)에 따른 상전이 그래프는 구리 산화물(Cuprates)과 같은 비전통적 고온 초전도체에서 관찰되는 전형적인 '초전도 돔(Superconducting Dome)'의 페이즈 다이어그램과 수학적으로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즉, 마법각 비틀린 이중층 그래핀(MATBG)은 수십 년간 미해결 과제로 남아있는 고온 초전도의 미스터리를 풀기 위한 완벽한 '양자 시뮬레이터'로 작동하게 된 것입니다.
물리적 의의 및 미래 양자 소자로의 응용
기존의 고온 초전도체 연구는 새로운 화학적 조성을 합성하고 도핑 농도를 바꾸기 위해 수많은 샘플을 일일이 구워내며 실험해야만 하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2차원 반데르발스 이종접합 구조는 단 하나의 미시적인 고체 소자 내에서 '비틀림 각도'와 '게이트 전압'이라는 물리적 다이얼만 돌려 모트 절연체, 스트레인지 메탈, 초전도체 등 복잡한 양자 위상을 자유자재로 켜고 끌 수 있게 해줍니다.
최근에는 그래핀뿐만 아니라 전이금속 디칼코게나이드(TMD) 등 다양한 2차원 소재의 비틀림 적층을 통해 위상 초전도성, 스핀 액체 등 다채로운 양자 현상이 보고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트위스트로닉스 기반의 2차원 이종접합 구조체는, 향후 외부 결함이나 노이즈에 강한 위상 양자 컴퓨터의 큐비트(Qubit) 소자나 초정밀 양자 센서를 구현하는 데 있어 가장 혁신적이고 제어 가능한 하드웨어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