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시대의 고래 의사소통 장거리 신호의 감쇠와 적응 전략
1. 서론
고래류(Cetacea)는 광대한 해양에서 저주파 음향(10–1000 Hz)을 이용해 수십 km 떨어진 개체와 소통하는 장거리 음향 의사소통자(long-range communicator) 이다.
이러한 음향신호는 짝짓기, 이동, 사회적 행동, 포식자 회피 등 생존의 핵심 기능과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하지만 최근 수십 년간의 기후변화(climate change) 와 인간 활동 증가(anthropogenic noise) 는
해양의 물리적 특성과 음향 전파 경로를 동시에 변화시키고 있다.
그 결과, 고래류의 장거리 의사소통 효율은 점진적으로 감소하고 있으며,
이로 인한 개체군 단절, 생식 성공률 저하, 행동 교란 현상이 보고되고 있다.
본 글에서는 기후변화가 해양 음향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고래류의 신호 감쇠(attenuation) 메커니즘과 그에 대한 생태적 적응 전략을 고찰한다.
2. 해양 음향 환경 변화와 기후 요인
2.1 해수 온도 상승과 음속 변화
해양 음속은 수온에 따라 직접적으로 변하며, 온도가 1°C 상승할 때 약 4–5 m/s 증가한다.
이 변화는 수중 음향 채널(sound channel) 의 굴절 조건을 바꾸어,
저주파 음향의 전파 경로를 왜곡시킨다.
예를 들어, 북태평양 해역에서 1970년 대비 음속 구조의 변동으로 인해
고래 음향 신호의 평균 전파거리가 약 12~18% 단축되었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되었다.
2.2 해양 산성화와 음향 흡수율
CO₂ 농도 증가로 인한 해수 pH 감소(8.1 → 7.8)는
보론(borate ion)의 농도를 줄여 저주파 흡수율을 감소시킨다.
단기적으로는 소리의 감쇠가 줄어 전파거리가 증가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산성화에 따른 미세기포 변화와 기후 관련 난류가
전반적인 음향 산란(scattering)을 유발하여 신호 품질을 저하시킨다.
2.3 빙하 해빙 및 선박 교통 증가
북극 해빙이 녹으며 항로가 확장됨에 따라,
선박의 엔진 및 프로펠러 공동현상 소음이 극지 해역에 급격히 유입되고 있다.
이는 고래류의 주 서식지인 북극해와 베링해 일대의 저주파 대역(63 Hz, 125 Hz) 을
평균 15–20 dB 상승시켜, 의사소통 신호의 신호대잡음비(SNR)를 크게 떨어뜨린다.
3. 고래류의 의사소통 특성
3.1 주요 의사소통 주파수
고래 종류 주파수 대역 최대 전파 거리 주요 기능
| 향유고래 (Sperm whale) | 2–20 kHz | 10–30 km | 탐색, 의사소통 |
| 대왕고래 (Blue whale) | 10–100 Hz | 1000 km 이상 | 짝짓기, 군집 유지 |
| 혹등고래 (Humpback whale) | 100–4000 Hz | 100–300 km | 구애음, 사회적 신호 |
| 밍크고래 (Minke whale) | 150–400 Hz | 50–100 km | 경계 및 위치 신호 |
고래류는 종마다 특유의 주파수 대역(frequency band) 을 이용하며,
대부분 저주파수 영역에서 에너지가 집중되어 있다.
3.2 ‘음향 창(Acoustic Window)’ 개념
바다의 특정 깊이와 주파수대에서는 소리가 가장 멀리 전파되는 구간이 존재하는데,
이를 음향창(acoustic window) 이라 한다.
기후변화로 인한 온도·염분·밀도 구조 변화는 이 창의 깊이와 위치를 이동시켜,
고래류가 사용하는 음향 채널의 효율을 저하시키고 있다.
4. 장거리 신호 감쇠 메커니즘
4.1 물리적 감쇠
- 산란(Scattering): 해수 중 미세 입자와 기포에 의한 음향 에너지 분산
- 흡수(Absorption): 해수 화학조성 변화로 인한 주파수별 에너지 손실
- 굴절(Refraction): 수온·염분 기울기에 따른 음선 경로 왜곡
4.2 인공소음 간섭
- 선박 엔진, 해양풍력 터빈, 해저 시추음이 고래 신호와 주파수 중첩을 일으킴
- 대왕고래의 20 Hz 구애음은 대형 선박의 저주파 소음과 겹쳐
신호인지 거리가 30~40% 감소 - 혹등고래의 노래는 선박 통항량이 많은 기간 동안
평균 지속시간이 25% 단축되는 현상이 관찰됨
4.3 생리적 영향
- 장기 노출 시 스트레스 호르몬(코르티솔) 농도 상승
- 청각 피로(temporary threshold shift) 누적에 따른 신호 인지 능력 저하
- 결과적으로 사회적 단절(social fragmentation) 과 번식 성공률 저하로 이어짐
5. 생태학적 적응 전략
5.1 주파수 변조 (Frequency Shifting)
일부 고래류는 소음 증가에 따라 자신들의 발성 주파수를 점진적으로 상향시켰다.
예: 북대서양 혹등고래는 지난 20년간 평균 발성 주파수가 30 Hz 상승한 것으로 보고됨.
이는 신호 간섭을 피하기 위한 ‘음향적 진화(acoustic evolution)’ 의 일종으로 해석된다.
5.2 시간대 조절 (Temporal Avoidance)
야간·조조(潮朝) 시간대처럼 선박 통항이 적은 시간에 집중적으로 발성하는
행동적 적응이 관찰된다.
이는 인공소음 회피 전략(anthrophony avoidance) 의 대표적 형태이다.
5.3 군집 내 협력 강화 (Group Coordination)
고래들은 집단 내에서 신호 패턴을 동기화하여
개별 신호의 SNR을 보완한다.
특히 대왕고래의 경우, 여러 개체가 동일한 주파수의 음향을
위상 동기화(phase-locking)해 송신함으로써
집단적 신호 증폭(cooperative amplification)을 수행한다.
5.4 서식지 이동 및 생태적 재분포
일부 종은 소음 밀도가 낮은 해역으로 서식지를 이동한다.
그러나 이러한 이동은 새로운 생태적 리스크(먹이 경쟁, 기후 불일치)를 수반하므로
단기적 적응일 뿐, 장기적 해결책은 아니다.
6. 결론
기후변화와 인공소음 증가는 해양의 음향 구조를 근본적으로 재편하고 있으며,
고래류의 의사소통 체계에 실질적 위협을 가하고 있다.
그들의 소리는 더 이상 바다를 멀리 울리지 못하고,
소음 속에 희미하게 묻혀가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 해양 사운드스케이프의 장기 모니터링,
- 저소음 해상 운송체계 구축,
- 고래류 발성 주파수 데이터의 국제 공유,
- 해양보호구역 내 음향 관리 기준 강화 가 필요하다.
고래의 노래는 단순한 울음이 아니라,
바다의 생태 균형을 알려주는 “음향적 경보음(acoustic alarm)”이다.
그들의 목소리를 지키는 일은 곧,
지구 해양의 생명 네트워크를 보전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