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운드스케이프를 통한 해양 생태계의 실시간 진단
1. 서론
해양은 시각적으로는 광활하고 고요하지만, 청각적으로는 끊임없는 정보의 장이다.
파도와 조류의 움직임, 고래와 돌고래의 신호음, 새우의 클릭음, 그리고 인공적 선박소음까지
이 모든 음향 정보가 해양 환경의 상태를 반영한다.
최근 해양학자들은 이러한 음향 정보(soundscape data) 를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분석하여
해양 생태계의 건강성을 평가하는 새로운 접근법, 즉 ‘해양 소리 지도(Ocean Sound Map)’ 구축에 주목하고 있다.
소리 지도는 단순한 음향 데이터의 집합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에 따라 변화하는 해양 생태계의 복합적 신호를 시각화한 생태 진단 플랫폼이다.
2. 개념 및 기술적 원리
2.1 사운드 매핑(Sound Mapping)의 개념
사운드 매핑은 특정 해역에서 수집한 음향 데이터를 지리 정보(GIS)와 결합하여,
주파수·강도·시간대별 소리 분포를 지도 형태로 표현하는 기술이다.
이를 통해 연구자는 어느 구역에서 어떤 생물음이 발생하며,
인공소음이 어떤 지역에서 집중되는지를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2.2 주요 기술 구성
- 하이드로폰 네트워크(Hydrophone Array):
해저에 설치된 수중 마이크로폰이 장기간 음향 데이터를 수집한다. - AI 기반 주파수 분석:
머신러닝 알고리즘이 생물음(biophony), 물리음(geophony), 인공음(anthrophony)을 자동 분류한다. - GIS 시각화 엔진:
수집된 데이터를 지도 상에서 시간·주파수·소음 강도별로 시각화해 ‘청각적 지형’을 구성한다. - 클라우드 모니터링 시스템:
실시간으로 데이터가 업로드·분석되어 연구자나 정책기관이 접근할 수 있다.
3. 구축 사례
3.1 글로벌 오션 사운드 매핑 프로젝트 (GOOS, 2023)
유네스코 산하 Global Ocean Observing System은 전 세계 60여 개 해양 관측소를 연결하여
범지구적 해양 사운드 데이터베이스(Global Soundscape Network) 를 구축했다.
이 시스템은 5분 단위의 음향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주파수 스펙트로그램 형태로 변환해 AI 모델이 자동으로 분석한다.
현재는 북대서양·지중해·서태평양을 중심으로 확장 중이며,
고래·새우·어류 등의 서식지 변화 탐지에 활용되고 있다.
3.2 미국 NOAA의 ‘SoundMap USA’
미국 해양대기청(NOAA)은 연안 및 해상 교통로의 소음 강도를 정량화한
‘SoundMap USA’를 개발했다.
이 지도는 선박통항정보(AIS)와 실시간 음향센서 데이터를 통합해
인공소음의 공간 분포를 예측하는 모델을 제공하며,
특히 고래 이동 경로 보호를 위한 통항제한구역 설정에 활용된다.
3.3 한국 해양수산부의 해양 음향환경 관측망 (예비 단계)
우리나라에서도 2024년부터 제주·동해·남해 연안을 중심으로
‘해양 음향환경 장기 관측망’ 구축이 추진되고 있다.
이는 해양생태계 기초 데이터를 확보하고,
수중소음이 어류 및 포유류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4. 생태학적 활용 및 의의
4.1 해양 생물다양성 평가
사운드 맵은 해양 생물의 존재 여부를 비침습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도구다.
예를 들어, 고래의 노래 주파수나 어류의 드럼음 패턴을 분석함으로써
서식종의 분포, 개체군 규모, 계절적 이동을 파악할 수 있다.
4.2 생태계 스트레스 진단
인공소음, 폭풍, 해류 변화로 인한 사운드스케이프 왜곡(soundscape distortion) 은
해양 생물의 스트레스 지표로 활용된다.
특히 특정 주파수 대역에서 소리의 강도가 비정상적으로 낮아지면,
그 지역의 생물활동 저하나 서식지 붕괴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다.
4.3 해양 복원 및 정책 지원
사운드맵은 단순한 연구 도구를 넘어,
환경영향평가(EIA) 와 해양보호구역(MPA) 지정의 근거로도 활용된다.
또한 소음 저감 정책, 선박 운항 규제, 해양공사 일정 조정 등
정책적 의사결정에 과학적 데이터를 제공한다.
5. 미래 전망
향후 사운드맵은 단순한 청각 데이터베이스를 넘어
‘음향 생태계 디지털 트윈(Acoustic Digital Twin of the Ocean)’ 으로 발전할 전망이다.
이는 실시간으로 바다의 음향·온도·염분·생물 활동 정보를 통합하여
해양 생태계의 변화 과정을 예측하고 시뮬레이션하는 시스템이다.
또한 위성·드론·AUV(무인잠수정)와 연계된 이동형 음향관측 네트워크가 등장하면서,
특정 해역의 생태 변화를 시공간적으로 연속 추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기술은 향후 기후변화 연구, 어업 관리, 생태 복원 정책에 핵심적 역할을 하게 된다.
6. 결론
바다의 소리를 지도화한다는 것은,
단순히 ‘듣는 바다’를 시각화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생태계의 언어를 데이터로 번역하는 과정이다.
사운드스케이프는 해양 생물의 다양성과 환경 스트레스를 동시에 반영하며,
그 변화는 곧 생태계의 건강 상태를 보여주는 실시간 지표다.
따라서 해양 보전의 미래는 더 이상 시각 중심이 아니라, 청각 중심의 과학으로 이동하고 있다.
“바다의 소리를 기록한다”는 행위는 곧 바다의 생명을 보존한다는 의미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