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해양은 소리로 가득 찬 환경이다.
고래의 노래, 돌고래의 클릭음, 새우의 진동 등 다양한 생물음이 생태계의 상호작용을 이루며, 이는 해양 생물의 생존과 번식에 필수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그러나 최근 수십 년간 선박, 해양 공사, 군사용 소나 등에서 발생하는 인공 소음(anthropogenic noise) 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해양 생물의 청각 기능이 물리적·생리적 손상을 입는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이러한 청각 손상은 단순한 불편을 넘어, 의사소통·먹이탐색·포식자 회피 능력의 상실로 이어져 개체 생존과 개체군 유지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본 연구는 해양 생물의 청각 구조와 인공 소음 노출에 따른 청각 피로(auditory fatigue) 및 손상 메커니즘을 고찰한다.
2. 해양 생물의 청각 시스템 특성
2.1 해양 포유류의 청각 구조
돌고래와 고래를 비롯한 해양 포유류는 공기가 아닌 지방층을 통한 음파 전도(fat-conducted sound transmission) 구조를 가진다.
이들은 고도로 특화된 이소골(ossicles) 과 달팽이관(cochlea) 을 통해 수중 음파를 감지하며,
이 구조는 저주파(고래)부터 초고주파(돌고래)까지 광범위한 대역의 음파를 해석할 수 있게 한다.
2.2 어류와 무척추동물의 청각 감수성
어류는 내이(otolith organ)를 이용해 진동을 감지하고, 일부 종은 기포기관(swim bladder)을 통해 음향 감도를 높인다.
갑각류와 두족류(오징어, 문어 등)는 단순한 감각모세포(mechanosensory hair cell)를 통해 수중 진동을 인식하며,
이 감각세포는 인공소음에 취약한 것으로 보고된다.
3. 소음 노출에 따른 청각 손상 메커니즘
3.1 일시적 청력역치 변화 (Temporary Threshold Shift, TTS)
짧은 시간 동안 높은 강도의 소음에 노출될 경우, 청각세포의 과자극으로 인해 청력역치가 일시적으로 상승한다.
이는 신경 전달 효율 저하 및 이온 불균형에 의해 발생하며, 노출이 중단되면 서서히 회복된다.
예를 들어, 170 dB 이상의 소음에 30분 노출된 돌고래는 약 24시간 후에야 정상 청력으로 회복되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3.2 영구적 청각 손상 (Permanent Threshold Shift, PTS)
장시간 노출 시에는 내이의 감각모세포 손상(hair cell loss) 이 발생해 청력이 영구적으로 저하된다.
이때 칼슘 과잉 유입으로 인한 세포 괴사, 활성산소(ROS)에 의한 산화적 손상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일부 고래류에서는 청각세포의 영구적 탈락과 함께 신경 시냅스 손상(synaptopathy)이 관찰되었다.
3.3 신경계 및 내분비계 반응
소음은 청각피질(auditory cortex)의 과흥분과 함께,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HPA) 축을 활성화시킨다.
이 과정에서 코르티솔 분비 증가와 혈류 변화가 일어나며,
장기간 지속되면 청각기관의 혈액 공급이 저하되어 손상 회복 능력이 떨어진다.
4. 연구 사례
4.1 군사용 소나와 고래 좌초
2000년대 이후, 중주파 소나(mid-frequency sonar) 사용 지역에서 고래의 군집 좌초(mass stranding)가 빈번히 보고되었다.
해부학적 분석 결과, 내이 내부에 미세 출혈과 공기 방울 형성이 확인되어,
급격한 수중 압력 변화와 음향 충격이 내이 조직 손상의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4.2 어류의 감각모세포 손상 실험
실험실 연구에서, 160–180 dB SPL의 인공 소음에 노출된 어류의 감각모세포는
48시간 내에 30% 이상 손실되었고, 청각 민감도는 약 20 dB 감소하였다.
이는 소음 강도뿐 아니라 노출 지속 시간과 주파수 대역이 청각 손상 정도를 결정하는 핵심 변수임을 시사한다.
4.3 코로나19 기간 중 소음 감소 효과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해양 교통량이 일시적으로 감소했을 때,
일부 지역에서는 고래와 돌고래의 청각 스트레스 지표가 감소하고, 발성 빈도가 정상 수준으로 회복된 현상이 관찰되었다.
이 사례는 인공소음 저감이 청각 회복에 실질적 효과를 가짐을 보여준다.
5. 생태적 영향
청각 손상은 단순히 개체의 청력 저하에 그치지 않는다.
소리를 통해 먹이·짝·무리를 찾는 해양 생물에게 청각 손상은 의사소통 불능 상태를 의미하며,
이는 번식 실패, 군집 해체, 포식 회피 실패 등으로 이어진다.
고래의 경우, 청각 손상은 이주 경로를 혼란시키고,
돌고래나 범고래는 사회적 네트워크 내 정보전달이 단절되어 개체군 유지가 어려워진다.
결국 소음에 의한 청각 피로는 해양 생물다양성의 감소와 생태계 기능 저하로 연결된다.
6. 결론
해양 생물의 청각은 단순한 감각 기관이 아니라, 생존과 생태적 균형을 유지하는 핵심 시스템이다.
그러나 인공소음은 이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마모시키며,
일시적 피로에서 영구적 손상까지 다양한 수준의 영향을 유발한다.
해양 소음 관리의 궁극적 목표는 단지 소음을 줄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생물의 청각이 회복될 수 있는 음향 환경, 즉 자연적 사운드스케이프가 복원된 해양을 만드는 것이다.
조용한 바다가 아니라, 건강한 소리의 바다가 진정한 생태 복원의 지향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