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해양은 인간 활동이 가장 빠르게 확장되는 공간 중 하나이며, 그 과정에서 인공 해양소음(anthropogenic ocean noise) 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특히 선박의 엔진, 프로펠러, 추진기 등의 기계적 진동은 저주파(10–1000 Hz) 대역의 강력한 소음을 지속적으로 방출한다. 이 주파수 범위는 고래, 돌고래, 물범 등 해양 포유류(marine mammals) 의 주요 의사소통 대역과 중첩되며, 결과적으로 음향 신호 교란(acoustic masking) 을 초래한다.
해양 포유류는 음파를 이용해 사회적 상호작용, 번식, 포식자 회피, 이동 방향 탐색 등을 수행한다. 따라서 음향 환경의 교란은 단순한 스트레스를 넘어, 종의 생태적 안정성과 개체군 유지 능력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2. 해양 포유류의 음향 의존성
2.1 의사소통의 주파수 영역
해양 포유류의 음향 신호는 종에 따라 다양하지만, 대체로 저주파(고래류) 에서 고주파(돌고래류) 까지 폭넓게 분포한다.
- 대형 수염고래류(baleen whales): 10–300 Hz — 수십 km 거리의 장거리 통신
- 이빨고래류(toothed whales, dolphins): 1–150 kHz — 단거리 에코로케이션 및 개체 인식
이러한 신호는 각각의 서식 환경과 생태적 역할에 맞게 진화했으며, 통신의 효율성은 소음 수준(signal-to-noise ratio) 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2.2 소음 마스킹(Acoustic Masking)의 개념
소음 마스킹이란 외부의 강한 소리가 생물의 유효 음향 신호를 가려 듣지 못하게 만드는 현상이다.
선박 엔진소음은 대체로 저주파·연속파(continuous low-frequency noise) 형태를 띠어, 고래류의 번식기 노래(song)나 사회적 호출(contact call)을 방해한다.
결과적으로 개체 간 신호의 도달 거리와 명료도가 감소하며, 이는 사회적 분리(social isolation)와 번식 성공률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3. 선박 엔진소음의 작용 기전
3.1 물리적 특성
엔진과 프로펠러는 회전 운동 중 공동현상(cavitation)을 일으키며, 이때 발생한 진동이 해수로 전달되어 수 km 이상 확산된다.
특히 수심 200~1000m 범위의 음속층(sound channel) 은 저주파 소음을 장거리로 전파시켜, 수백 km 떨어진 영역에서도 동일한 신호가 감지될 수 있다.
3.2 생리적 반응
고래와 돌고래는 장기간 소음 노출 시 스트레스 호르몬(코르티솔) 분비가 증가하며, 청각피질 손상과 행동 반응 둔화가 보고되었다.
특히 2017년 NOAA 연구에서는 벨루가 고래 가 6시간 이상 선박 소음에 노출될 경우, 혈중 코르티솔 농도가 평시 대비 2.3배 상승했다고 보고하였다.
이는 소음이 단순한 인지 방해가 아닌 신경·내분비계 스트레스 요인임을 의미한다.
4. 관찰 사례 및 연구 결과
4.1 북대서양 귀신고래(North Atlantic Right Whale) 사례
이 종은 극도로 제한된 번식지와 이동 경로를 가지고 있으며, 해상 교통로와 겹치는 구간이 많다.
2004–2022년 동안 수행된 NOAA Passive Acoustic Monitoring 데이터에 따르면, 선박 소음이 높은 시기에는 고래의 호출 빈도(vocalization rate) 가 평균 30~60% 감소하였다.
이는 소음이 고래의 ‘침묵 행동(silencing behavior)’을 유발하여, 개체 간 거리 유지와 새끼 보호 의사소통을 저해한 것으로 분석된다.
4.2 돌고래의 통신 패턴 변화
플로리다 연안에서 관찰된 큰돌고래(Tursiops truncatus)는 선박 통항이 잦은 시간대에 짧고 높은 음조(shorter and higher-pitched calls) 를 사용하였다.
이는 의사소통 신호를 소음 대역 밖으로 옮기려는 적응 반응이지만, 이러한 변화는 신호의 의미적 정확성을 떨어뜨려 사회적 오인(miscommunication)을 증가시킨다.
5. 장기적 생태 영향
5.1 개체군 수준의 영향
지속적인 의사소통 교란은 짝짓기 실패율 증가, 어미–새끼 분리 사고, 집단 이동 경로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개체 수준의 영향이 누적되면, 개체군의 재생산률 감소 및 지역적 멸종(local extinction) 위험으로 발전한다.
5.2 생태계 연쇄 효과
고래와 돌고래는 해양 먹이망의 상위 포식자로서, 그 행동 변화는 먹이생물의 개체 밀도 조절, 해양 탄소 순환 등에 파급효과를 미친다.
따라서 의사소통 교란은 단순히 특정 종의 문제를 넘어, 해양 생태계의 구조적 안정성(structural stability) 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6. 완화 및 보전 대책
6.1 기술적 접근
- 저소음 추진 기술(Quiet Propulsion): 프로펠러 공동현상 억제 설계, 전기 추진 시스템 적용
- 소음 차폐 기술: 선체 방진 구조(vibration damping hull)
- AI 기반 소음 모니터링: 실시간 음향 데이터로 선박 경로 자동 조정
6.2 관리·정책적 접근
- 선박 속도 제한(speed reduction): 속도를 10% 줄이면 수중소음이 약 40% 감소함 (JASA, 2024)
- 해양 포유류 주요 서식지에 통항 회피 구역(Traffic Exclusion Zone) 설정
- IMO(국제해사기구) 를 통한 글로벌 소음 배출 기준 강화 및 인증제 도입
7. 결론
선박 엔진소음은 단순한 기술적 부산물이 아니라, 해양 포유류의 생존 전략을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생태적 소리공해(acoustic pollution) 다.
이 소음은 개체 간 의사소통의 실패를 초래하며, 번식·이동·사회적 구조 등 해양 포유류의 핵심 생태 기능을 교란한다.
따라서 향후 해양 정책은 소음 관리(noise management) 를 해양 보전 전략의 필수 요소로 포함해야 하며,
AI 기반 음향 모니터링·저소음 기술 도입·국제 협력 체계를 결합한 통합적 해양 음향 관리 모델 구축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