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극지방 해역은 지구 기후변화가 가장 먼저, 또 강하게 나타나는 지역 중 하나이며, 이곳의 빙하와 해빙(ice melt) 과정은 해양 환경 변화의 중요한 지표가 된다.
최근 연구에서는 빙하가 녹아내리거나 빙붕이 해수로 붕괴되는 과정에서 특유의 수중 음향 신호(acoustic emissions) 가 발생하며, 이는 단지 지구물리적인 현상에 머무르지 않고 해양 생물군(특히 청각 의존 생물)의 청각환경(auditory habitat) 에까지 영향을 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빙하 해빙이 생성하는 수중 소리의 특성 및 전달 메커니즘을 검토하고, 이러한 음향 변화가 해양 생물군에 어떻게 미세하게 영향을 미치는지, 동시에 향후 연구·보전·정책적 시사점을 제시한다.
2. 배경 및 메커니즘
2.1 빙하 해빙 음향의 발생
빙하가 해수로 붕괴되거나 내부 공기방울이 빠져나오면서 발생하는 소리는 주로 다음 과정을 통해 생성된다:
- 빙하 내부에 포집되어 있던 공기방울이 해빙 과정에서 해수로 방출되며, 이 방울의 탈기(degassing) 및 팽창이 불연속적 폭발음(transient bubble release sound) 을 만든다.
- 또한 빙하 전면의 해저 접촉면이 붕괴되거나 마찰하면서 발생하는 빙하 크래킹(ice-quakes) 음향 신호도 존재한다.
이러한 음향 신호는 주파수 대역에서 약 1 kHz–3 kHz 사이에 뚜렷한 피크를 가지며, 해수 중에서는 수십 킬로미터까지 전달될 수 있음이 보고된다.
2.2 음향 전달 및 환경 변화
빙하 해빙 소음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해양 음향환경을 변화시킨다:
- 해빙 소음이 증가하면 해당 해역의 잔재 소음(baseline ambient noise level) 이 상승하게 되고, 이는 해양 생물의 음향 신호 대비 노이즈비(signal-to-noise ratio, SNR)를 저하시킬 수 있다.
- 또한 해빙에 의해 해수의 순환·혼합이 증가하며, 이에 따라 수중 음속(sound speed) 프로파일 및 음파 전파 특성이 변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생물의 청각 또는 음향 탐색 행동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 극지방에서 빙하가 줄어들면 해수면이 더 개방되고, 그 결과 선박 통항, 해양개발 활동 등이 증가할 수 있으며 이는 인공소음(anthrophony) 증가로 이어진다.
3. 실측 연구 사례
3.1 Kongsfjorden (스발바르 제도) 연구
노르웨이 스발바르 제도 인근 Kongsfjorden에서 수행된 연구에서는 2015–2019년 겨울 동안 수중 음향 관측을 실시했고, 해빙이 진행된 기간에는 평균 배경소음이 약 8 dB 이상 상승한 것이 확인되었다. 주요 상승 주파수 대역은 약 1–3 kHz였다.
이 연구는 빙하 해빙 소리가 물리적으로 기록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뿐 아니라, 기후 이상(예: 온수 유입, 이상저기압 통과)과의 상관관계도 제시했다.
3.2 East Siberian Sea 기록
동시베리아해(East Siberian Sea)에서는 여름철 해빙이 줄어든 시기에 수중 잔재소음 수준이 약 13 dB 이상 증가한 것으로 보고됐다. 이는 빙하 감소 → 개방수면 증가 → 바람·파랑·빙하 붕괴음 등의 물리음과 더불어 생물음 및 인공음의 변화까지 반영된 결과로 해석된다.
4. 해양 생물군에 대한 미세한 영향
4.1 청각의 민감성 저하
해빙음 및 그로 인한 잔재소음 증가는 해양 생물, 특히 청각이나 음향 의존성이 높은 종(고래류, 물범류, 어류 등)에게 다음과 같은 영향을 줄 수 있다:
- 음향 마스킹(acoustic masking): 생존 신호(의사소통, 포식자 회피, 유영탐색)가 해빙음에 의해 덮이게 되고, 이는 통신 거리 감소, 호출 실패율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 청각 피로(auditory fatigue): 지속적인 배경소음 증가로 인해 청각 수용기관이 피로 상태에 놓일 수 있으며, 이로 인해 반응속도 감소, 신호 탐지능 저하 등이 나타날 수 있다.
4.2 행동 변화 및 서식지 회피
소음이 증가한 해빙 인접 해역에서 생물들은 서식지 회피(avoidance) 또는 사냥·이동 패턴의 변화를 보일 수 있다. 예컨대 고래·물범류는 빙붕 붕괴음과 해빙소음이 반복되는 구역을 피하는 경향이 관찰된 바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먹이·번식·이동을 위한 이상적 서식지가 줄어드는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4.3 생태계 연결망의 영향
청각환경 변화가 한 종에게 미치는 영향은 결국 먹이망 전체로 파급될 수 있다. 예컨대, 물범이 해빙소음 증가로 서식지를 벗어나면 그를 포식하는 포유류나 해양 새들의 먹이 자원이 줄어들며, 이는 상위 포식자까지 이어지는 생태계 기능 약화를 초래할 수 있다.
5. 정책 및 보전 함의
5.1 모니터링 강화
빙하 해빙 소음이 생물군에 미치는 영향을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속적 수중 음향 모니터링(passive acoustic monitoring, PAM)**이 필수적이다. 특히 극지방에서는 기상·빙하 변화가 급속히 일어나므로, 장기·정밀 관측망 구축이 권고된다.
5.2 통항 규제 및 인공소음 저감
빙하 감소로 인한 통항로 개방이 증가하면서 인공소음이 추가로 증가될 수 있다. 따라서 극지 연안 해역에서는 선박 통항 제한, 저소음 선박 설계, 운항속도 제한 같은 소음관리 정책(acoustic regulation) 이 중요해진다.
5.3 생태리스크 평가의 음향 요인 포함
환경영향평가(EIA)나 해양공사 사전검토 시에는 단지 물리·화학적 변수뿐 아니라 음향 영향(acoustic impact) 도 포함되어야 한다. 특히 해빙 해역 인근 개발에서는 해빙소음과 인공소음의 복합 효과를 고려해야 한다.
6. 결론
빙하 해빙은 단순히 기후변화의 결과물이 아니라, 해양 음향환경의 직접적 변화원으로서 기능한다. 이러한 변화는 해양 생물군에게 ‘미세하지만 누적적인’ 영향을 미치며, 이는 개체 수준을 넘어 생태계 수준까지 확산될 수 있다.
따라서 극지방 해양 보전은 얼음이 녹는 소리를 듣는 것, 즉 청각환경의 변화를 감지하고 대응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빙하가 녹아 ‘조용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소리마저 생태계에 의미 있는 신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