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해양 환경은 인류의 산업 활동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선박 운항, 해양 개발, 군사 훈련 등으로 인한 인공적 소음(anthropogenic noise) 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인공 해양소음은 단순한 물리적 진동을 넘어, 해양 생물의 생리·행동·생태적 기능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환경오염 요인으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고래류(whales) 는 음향을 주요 감각수단으로 사용하는 대표적 해양 포유류로, 청각 정보에 기반해 이동 경로를 결정하고 사회적 의사소통, 먹이 탐색, 번식 활동을 수행한다. 따라서 인공소음이 이들의 음향 환경을 교란할 경우, 이동 행태의 변동 및 개체군 수준의 생태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2. 수중 음향 환경과 고래의 생태적 의존성
고래류는 수중에서 시각보다 청각에 의존하는 생물이다. 이들은 저주파~중주파 대역(약 10Hz–25kHz)의 음파를 통해 수십 km 떨어진 개체와 소통하거나, 해저 지형 및 먹이 분포를 인지한다. 이러한 음향 지향성(acoustic orientation) 은 해양 내비게이션과 사회적 구조 유지에 필수적이다.
그러나 선박 엔진, 프로펠러, 해저 건설 장비에서 발생하는 저주파 소음은 동일한 주파수 대역을 점유하여 고래의 통신 신호를 음향적으로 마스킹(acoustic masking) 한다. 그 결과, 고래는 통신 효율이 저하되어 무리 간의 거리 유지가 어려워지고, 이동 방향이나 회유 경로를 수정하는 등 행동적 회피 반응(avoidance behavior) 을 보이게 된다.
3. 선박 소음과 고래 이동 경로 변화
최근 수십 년간의 관측 자료에 따르면, 해상 교통량이 많은 해역(예: 북대서양, 벨링해협, 북태평양 등)에서 고래의 회유 경로가 선박 항로를 피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거나, 일정 속도가 감소하는 현상이 보고되고 있다.
특히 대형 고래류(baleen whales)는 선박의 저주파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일부 개체는 이동 도중 급격한 방향 전환을 하거나, 이동을 중단한 사례도 관찰되었다. 이러한 반응은 단기적으로는 스트레스성 회피 행동, 장기적으로는 먹이장소 도달 지연, 에너지 소비 증가, 번식기 이동 실패로 이어질 가능성을 내포한다.
예를 들어, 2023년 Deep Sea Research에 게재된 Escajeda et al.의 연구에서는, 북극권 고래류가 선박 소음 수준이 높은 시기에는 기존 이동 루트를 회피하여 최대 20% 이상의 경로 이탈을 보였다고 보고했다. 이는 해양 교통이 빈번한 지역일수록 고래의 에너지 효율성과 생리적 안정성이 심각하게 저하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4. 생리적·행동학적 영향
인공소음은 단순히 이동 경로만이 아니라, 고래의 청각 기관과 신경계에도 생리적 스트레스 반응을 유발한다. 장기간 소음 노출은 코르티솔 등 스트레스 호르몬의 상승, 청각세포 손상, 행동 반응 둔화 등을 초래한다.
또한 고래는 소음을 상쇄하기 위해 더 높은 음량으로 울음소리를 내거나 주파수를 조정하는 ‘보상 발성(compensatory vocalization)’을 수행하지만, 이는 에너지 소비를 증가시키고 장기적으로 피로 누적을 초래한다. 결과적으로 개체의 번식률 저하, 성장지연, 이동 실패 등 개체군 수준의 영향으로 확대될 수 있다.
5. 생태계 및 개체군 수준의 파급효과
고래의 회유 경로는 해양 생태계의 먹이사슬 구조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들의 이동 패턴이 변화하면 플랑크톤–어류–고래로 이어지는 먹이전달 구조가 왜곡되며, 지역 생태계 내 영양균형이 흔들릴 수 있다.
또한 고래는 대량의 유기물을 심해로 운반하는 “해양 탄소 순환의 핵심 종(whale pump)” 역할을 하므로, 이동 감소나 개체군 축소는 탄소 흡수·퇴적 과정에도 부정적 영향을 준다.
결국 인공소음은 단일 개체의 문제를 넘어 지구적 해양 생태계 기능 저하로 확산될 수 있다.
6. 관리 및 보전 방안
이러한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국제해사기구(IMO)와 각국 해양기관은 선박 소음 저감 기술(저소음 프로펠러, 엔진 진동 완화 설계 등) 을 도입하고 있다. 또한 고래 주요 이동 경로에 대해 선박 통항 제한 구역(Traffic Avoidance Zone) 을 설정하거나, 선박 속도를 일정 수준 이하로 유지하는 정책(speed reduction policy)이 시행되고 있다.
더불어 하이드로폰(hydrophone) 네트워크를 통한 실시간 음향 모니터링은 고래의 행동변화를 조기에 감지하고, 위험 해역을 관리하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7. 결론
인공 해양소음은 고래의 이동 경로와 행동 양식에 실질적인 변화를 초래하며, 이는 해양 생태계 전반에 복합적인 영향을 미친다. 고래는 단순한 대형 포유류가 아니라, 해양 생태계의 구조적·기능적 안정성을 유지하는 핵심종이다.
따라서 인공소음을 단순한 ‘소리 공해’로 보지 않고, 생태학적 오염(ecological pollution) 으로 인식하는 시각 전환이 필요하다. 지속 가능한 해양 교통과 음향 환경 관리가 병행될 때만이, 해양 생물과 인간의 공존이 가능할 것이다.